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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  전봉준 등 동학농민군 판결기록 복원

    작성일 : 2020-05-10 16:02 작성자 : 박의열 기자

     

     

    국가기록원은 511일 동학농민혁명 기념일을 맞아 전봉준 등 동학농민군들의 형사재판원본(1895)에 대한 복원을 완료하고, 복원된 원문의 디지털이미지를 국가기록원 누리집을 통해 제공한다고 10 밝혔다.

     

    이번 복원된 형사재판원본은 최초의 근대적 형사재판 판결문으로서 전봉준, 손화중, 최경선, 대원군 손자 이준용 등 총 217명의 최종 판결선고서가 포함된 217매 분량의 판결기록이다.

     

    이 기록물은 120년 이상의 시간의 경과로 종이에 황변화가 일어나고 일부 부위는 결실과 가장자리 바스라짐 등이 진행되고 있어 복원이 시급한 상태였다.

     

    이에 따라 국가기록원의 종이복원 전문인력에 의해 3개월에 걸쳐 오염제거 및 결실부 보강처리가 이루어졌으며, 한지를 이용한 구조물 보완과 우리나라 전통 오침안정법*으로 제책을 마쳐 복원이 완성됐.

    * 책의 등 쪽에 다섯 개의 구멍을 뚫고 (무명)실로 꿰 메는 제본 방식

     

    이 형사재판원본은 갑오개혁기 설치된 법무아문권설재판소(法務衙門勸設裁判所)*, 특별법원, 고등재판소의 판결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수록된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.

     

    법무아문권설재판소 판결문 중 전봉준의 판결선고서**에는 전봉준이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하게 된 배경, 1·2차 봉기의 시작과 그 과정 등 전봉준의 행적이 가장 압축적으로 정리되어 있다.

    * 지금의 대법원에 해당하는 우리나라 최초 근대적 재판소

    ** 1895329일 전봉준의 형량을 결정한 최종 판결문

     

     

    이 외에도 당시 함께 활동한 손화중, 김덕명, 최경선 등의 심문기록과 폐정개혁요구안 및 농민군의 진격 경로도 포함되어 있다.

     

    또한 당시 사법부가 일제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다는 사실*을 방증하는 경성 주재 일본 영사 우치다 사다츠치(內田定槌)의 서명도 확인할 수 있다.

    * 1876년 조일수호조규(강화도조약)1882년 청과의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에 의해 일본인 관료가 조선인 재판관과 함께 재판에 참여하는 회심제도가 운영되고 있었음